[네팔의 희망 'K농업'③] "우유가 마을을 바꿨어요"…네팔 산간마을에 생긴 기적
  • 박은평 기자
  • 입력: 2025.06.27 11:00 / 수정: 2025.06.27 21:35
한국-네팔 '시범낙농마을' 가보니…
'가난한 농가'에서 '지속 가능한 자립 공동체'로
신둘리에 있는 다마르빌리지 헤퍼 농업현장학교에서 자조그룹 회원들이 사료 배합에 대해 수업을 듣고 있다./공동취재단
신둘리에 있는 '다마르빌리지 헤퍼 농업현장학교'에서 자조그룹 회원들이 사료 배합에 대해 수업을 듣고 있다./공동취재단

[더팩트ㅣ카말라마이(네팔)=박은평 기자]

"여성들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발표하고 공유하는 과정 자체가 큰 동기부여가 된다.

단순한 수혜자가 아닌 가족과 마을의 변화를 이끄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산타 타파 다마르 여성 자조그룹 회장

13일(현지시간)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남동쪽으로 150㎞ 떨어진 신둘리에 있는 '다마르빌리지 헤퍼 농업현장학교'에 30여 명의 여성 농민들이 모였다. 무더운 날씨에 실외에서 진행되는 수업에도 농민들의 표정은 밝았다. 바닥에 깔린 장판이 수업 준비의 전부. 의자나 책상, 변변한 필기도구도 없었지만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엔 수업에 대한 진지함이 묻어났다.

농업현장학교는 한 달에 두 번 운영된다. 한국에서 온 소를 잘 키우는 방법부터 자조금 운영, 회계 교육까지 실습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날은 헤퍼의 현장활동가이자 사료전문가인 너빈 까르끼 씨가 사료 배합에 대해 강의했다.

현장에는 한국 젖소를 보유한 11농가와 송아지를 나눔받은 5농가, 소를 기다리는 10농가 농민이 자리했다. 이들은 송아지를 나눔하면서 사료 모종도 함께 선물한다. 좋은 사료를 먹어야 잘 자란다는 인식이 없던 그들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3년 전부터다.

2022년 12월,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 민간 국제개발단체인 헤퍼코리아가 협력해 선별된 한국형 홀스타인 젖소 101마리가 네팔에 전달됐다./헤퍼코리아
2022년 12월,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 민간 국제개발단체인 헤퍼코리아가 협력해 선별된 한국형 홀스타인 젖소 101마리가 네팔에 전달됐다./헤퍼코리아

2022년 12월,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 민간 국제개발단체인 헤퍼코리아가 협력해 선별된 한국형 홀스타인 젖소 101마리가 네팔에 전달됐다.

이 프로젝트를 이끈 이혜원 헤퍼코리아 대표는 "6.25전쟁 이후 폐허가된 한국에 미국의 비영리기간 헤퍼인터내셔널 주도로 진행된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로 젖소 897마리가 들어왔다"며 "대한민국을 낙농강국이 되게 한 마중물"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빈국 중 하나인 네팔은 토종 젖소의 우유 생산량이 한국의 10%에도 미치지 않는다"며 "한국이 과거에 받았던 도움을 다른 나라에 되돌려주고자 네팔에 젖소를 보내는 데 힘썼다"고 밝혔다.

젖소 개량 기술의 성과도 프로젝트의 근간이 됐다. 한국 젖소의 305일 보정유량은 1995년 6868kg에서 2022년 1만301kg으로 약 1.5배 늘었다. 이는 연간 500억 원 규모로 이뤄지는 종축 개량 지원사업의 성과다.

농식품부는 네팔에 젖소를 보내기 위해 통상 5~6년이 걸리는 검역절차를 1년4개월로 줄였고, 농협중앙회는 젖소 선발과 사료 지원에 힘을 보탰다.

젖소를 보낸 후 정부와 헤퍼코리아는 농가가 젖소를 제대로 키울 수 있도록 사양관리 기술 교육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타파 자조그룹 회장은 "2021년 한국 젖소(홀스타인)를 맞이할 준비를 계기로 자조그룹이 처음 만들어졌다"며 "우사를 짓고 사육환경을 갖추는 일을 시작으로 2022년부터 농업현장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조그룹은 매달 100루피씩 공동기금을 적립하고 있다. 이 돈은 낙농 관련 자금이 필요한 구성원에게 대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서로 도우며 자립 기반을 다져가고 있는 것이다.

농민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쇼바 다할 씨는 "예전에는 소가 평소와 달라보여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소가 울면 사료를 더 주는 정도였다"며 "교육받은 후부터는 분뇨도 살피고 기존과 다른 행동이 나타나는지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신둘리 카말라마이시에는 '한-네팔 시범낙농마을'도 조성됐다.

네팔로 건너간 젖소로 현지 농가 소득 수준은 크게 올랐다. 네팔 젖소의 일평균 우유생산량은 5L에 불과하지만 한국 젖소는 25L에 달한다. 일부 젖소는 하루 30L 이상의 우유를 생산하기도 한다.

우유 집유소와 냉각탱크, 디지털 관리 시스템을 갖춘 카말라이 여성낙농협동조합에 우유통을 든 농민들이 모이고 있다./공동취재단
우유 집유소와 냉각탱크, 디지털 관리 시스템을 갖춘 '카말라이 여성낙농협동조합'에 우유통을 든 농민들이 모이고 있다./공동취재단

해가 질 무렵 농민들은 우유통을 들고 '카말라마이 여성낙농협동조합'으로 모인다. 우유 집유소와 냉각탱크, 디지털 관리 시스템을 갖춘 조합은 하루 1300L 이상의 우유를 집유한다. 이들은 이곳에서 우유를 팔아 매달 20만~30만원의 소득을 올린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뿌리 깊은 네팔에서 여성들의 소득이 늘자 가정의 분위기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곳에서 만난 수니따 커뜨리 포크렐 씨는 "'네가 뭘 할 줄 아냐'며 외부 활동을 막던 남편이, 이제는 낙농 교육을 받으러 간다고 하면 '빨리 다녀오라'고 말한다"며 웃었다. 인디라 포카렐 씨도 "요즘은 남편이 요리도 한다"며 미소 지었다.

이들은 단순히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사회의 인식을 바꾸고 공동체를 이끄는 주체로 성장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2030년까지 88억원을 들여 한국에서 지원한 젖소를 기반으로 네팔의 우유 생산·집유·가공·유통 단계별 인프라를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배합사료 공장을 설치하고, 태양열 펌프를 활용한 안정적인 물 공급 시스템도 구축할 방침이다.

안용덕 농식품부 축산정책관은 "앞으로도 낙농 인프라 구축, 씨소수 선발 지원, 기술 교류 등을 통해 네팔 낙농산업의 자립 기반 마련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며 "네팔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축산 기술과 협력 모델이 다른 개발도상국으로도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2022년 12월,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 민간 국제개발단체인 헤퍼코리아가 협력해 선별된 한국형 홀스타인 젖소 101마리가 네팔에 전달됐다. 사진은 한 농가에서 키우고 있는 홀스타인 젖소의 모습./공동취재단
2022년 12월,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 민간 국제개발단체인 헤퍼코리아가 협력해 선별된 한국형 홀스타인 젖소 101마리가 네팔에 전달됐다. 사진은 한 농가에서 키우고 있는 홀스타인 젖소의 모습./공동취재단

pep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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